청도 자계서원(紫溪書院),탁영 김일손
청도쪽 한바퀴 돌면서 은행나무로 유명한
청도 자계서원 들러보았습니다.
자계서원은 초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탁영 김일손 선생을 제향하고 있는 서원입니다.
방문일시: 2025년 1월 11일
자계서원(紫溪書院)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탁영 김일손 선생(1464~1498)과 조부이신 절효 김극일 선생, 장조카 삼족당 김대유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이곳은 원래 탁영선생이 공부하던 운계정사였으나 선생이 무오사화때 화를 입고 서거하신 후 중종 13년(1518)에 청도지역의 유생들이 뜻을 모아 사당으로 바꾸고 자계사(紫溪祠)라 하고 탁영 선생을 제향해 왔다. 선생이 무오사화로 서거하실 때 서원 앞 시냇물이 붉은 색으로 바뀐 이변이 있어 자계(紫溪)라 한 것이다.
서원에는 사당인 존덕사(尊德祠)가 있으며 강당인 보인당(輔仁堂)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고주형 집이며, 겹처마의 팔작지붕이고 활주가 있다. 영귀루와 보인당 사이에 유생의 숙소인 동.서재가 있는데, 동재의 건축기법은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유례여서 중용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500년 이상의 오래된 은행나무와 뒤쪽으로는 내삼문과 사당인 존덕사가 보이고
좌측 동재에는 '운계정사'라는 현판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탁영 김일손 선생에 대해서 알아보면....
김일손(金馹孫,1464~1498)선생은 조선 송종.연산군 때의 문신이며 학자,사관,시인이다.
본관은 김해이며, 자는 계윤,호는 탁영(濯纓), 소미산인(少微山人)이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성종 때 춘추관의 사관이 되어 세조 찬위의 부당성을 풍자하여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었다. <조의제문>은 그의 스승 김종직이 항우(項羽)가 초 회왕(懷王), 즉 의제(義帝)를 죽이고 찬탈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초 의제를 조상하는 형식이었지만 실은 단종을 의제에 비유한 것으로 세조의 찬탈을 비판한 것이었다. 이 조의제문에 대해서 1498년(연산군 4년) 유자광·이극돈 등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그 결과로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고, 권오복(權五福)·권경유(權景裕)·이목(李穆) 등 사림파 여러 인물들과 함께 처형당하게 된다.
그의 언행 가운데 훈구파에서 문제로 삼았던 것은 덕종의 후궁인 소훈 윤씨(昭訓尹氏)에게 이유 없이 지나치게 많은 전민(田民)과 가사(家舍)를 내렸다고 세조의 실정을 비판했고, 세조가 소훈 윤씨와 소의 권씨 등 장남 덕종의 후궁을 범하려다가 실패한 것을 기록했으며, 〈조의제문〉을 그대로 사초에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그는 대역죄로 능지처참되고, 스승 김종직은 부관참시되었으며 다른 많은 사림들도 화를 당하게 되었다.
무오사화를 계기로 세조 때 등장하여 성종 때에 날개를 펴며 세력을 확장하던 신진 사림은 집권층인 훈구파에게 대거 숙청되면서 몰락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