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한개마을 한주정사(寒州精舍)
방문일시: 2024년 8월 2일
만귀정에서 시원하이 푹 쉬다가
집으로 복귀하면서 성주를 지나는데
문득, 지금쯤 한개마을에도 배롱나무가 이쁘게 폈을듯 해서
성주 월항에 있는 한개마을 찾아봤습니다.
덕분에 한주정사에서
생각도 못했던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보고 오게 되었네요.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
성주 한개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속 마을입니다.
'한개'라는 마을의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로,
'큰 개울'을 뜻합니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 때에 진주목사를 지낸 이우(李友)가
1450년 무렵 마을에 들어온 이후 성산이씨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한개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양쪽에 배롱나무가 이쁘게 핀 비각이 하나 보이는데,
알고보니 '응와 이원조 선생 신도비각'이었습니다.
이원조 선생의 본관이 성산이죠.
좀전에 다녀온 포천구곡 만귀정도
이원조 선생이 만년에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정진코자 건립한 정자였습니다.
오늘 선생이 저를 이곳으로 이끈듯 하네요.
같은 본관은 아니지만 저 또한 성주를 본향으로하는 이씨인지라
뭔가 끌린다고 해야 할까요.ㅎㅎ
'정헌공(定憲公) 응와이선생(凝窩李先生) 신도비'
이 신도비는 성주 이판서로 잘 알려져 있는 한개 출신의 문신이며 학자인 응와 이원조(1792~1871)선생의 신도비이다.
원래 1907년 3월에 사림이 발의하고 문중이 호응하여 한개마을 입구에 세웠던 것을 위치가 불리하여 2001년 12월에 오른쪽 위로 조금 옮기면서 경내를 정비하였다.
신도비 들러보고 한개마을로 올라갑니다.
앞전에 한번 살펴보고 갔기고 했고 시간도 늦어서,
오늘은 곧장 한주정사로 올라갑니다.
양반댁 담장에만 핀다는 능소화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도동댁'
도동댁은 이원조의 둘째 아들인 이기상이
응와종택에서 분가하여 1850년에 건립한 것으로,
도동댁이라는 이름은
현재 소유자의 어머니가 도동서원이 있는 달성군 구지면 도동마을에서
시집을 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삼가원(三可園)'
‘삼가(三可)’는 선비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知, 仁, 勇)을 뜻한다.
도동댁에도 배롱나무가 이쁘게 피어있습니다.
'한주종택'
한주종택은 영조 43년(1767)에 이민검이 처음 지었고,
고종 3년(1866) 이진상이 고쳐지었다.
1910년 이승희가 아버지인 한주 이진상의 호를 딴 한주정사를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의 호를 따서 한주종택이라고 불렀다.
독립운동가 이승희(1847~1916)
이승희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되자 경상도 유림의 뜻을 모아
'을사5적'의 참형과 조약의 파기를 상소하였습니다.
이 일로 5개월여의 옥고를 치렀으며,
1907년 성주군의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와 세계 각국 정부에 서한을 보내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寒洲精舍’(한주정사)'
한주종택의 별당으로 배롱나무가 이쁘게 피어 보는 눈이 황홀했습니다.
앞으로 나온 누각에는 '한수헌(寒水軒)'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한수헌' 편액 뒤쪽으로 '한주정사' 편액이 보입니다.
'한주정사' 편액
필체가 시원시원하네요.
‘祖雲憲陶齋’(조운헌도재) 편액
‘조운헌도’의 뜻은
“운곡(雲谷) 즉 주자를 근본으로 하고, 도산(陶山) 즉 퇴계를 본받는다"
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한주 이진상이 30세에 직접 써서 서재에 걸었다고 합니다.
'조운헌도재"
잘 둘러보고 복귀합니다.
'국내여행,문화재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밀양 금시당,월연정,오연정 배롱나무 (0) | 2024.08.14 |
---|---|
영천 우로지 맥문동 개화소식 (0) | 2024.08.13 |
성주 포천계곡(포천구곡),만귀정 (1) | 2024.08.12 |
성주 성밖숲 맥문동 개화소식 (0) | 2024.08.10 |
달성 삼가헌고택 (0) | 2024.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