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선암서원(仙巖書院)
청도 선암서원은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談)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원래 매전면 동산동 운수정(雲樹亭)에서 향현사(鄕賢祠)로 건립되었으나 조선 선조 10년(1577)에 군수 황응규가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선암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고종 15년(1878)에 다시 중건되고 선암서당으로 고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 건물은 강당인 소요당,안채,사랑채인 득월정(淂月亭)으로 구성되어있다.
선암서당의 뒤편 장판각에는 보물로 지정된 배자예부운략판목과 지방문화재 해동숙소학판목, 14의사록판목 등이 보관되어 있어 한국학의 보고(寶庫)라 불렸다. 현재 이 유물들은 청도 박물관과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전시.보관중이다.
방문일시: 2024년 8월 3일
지난 봄에 왔을 때는 문이 열려 있어서
안을 다 볼 수 있었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주위를 둘러가며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풍경 위주로 구경했습니다.
'선암서당(仙巖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2024년 2월 18일 방문했을 때 모습입니다.
바로 옆 '순절추모비'쪽에
배롱나무가 이쁘게 피어있었습니다.
'순절추모비(殉節追慕碑)'
"여기 선암에서 서편으로 바라다보이는 곳이
어성산이며 그 우편이 방응봉,좌편이 봉황애이다.
임란 당시 이 천척절벽에서 천성만호 박경선 공이,
왜장을 안고 떨어져 장렬하게 전사 하신 곳이다.
그의 충혼을 기리어
순절추모비를 이곳에 삼가 세우다."
소요대(逍遙臺)
'소요하다'라는 뜻은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다.'
라는 뜻입니다.
소요당 박하담이 여기서 소요하며
세월을 낚고 있었을듯 합니다.
참 멋진 말이네요.
저 또한 이리저리 소요하며 다니는걸 좋아합니다.
여기서 소요당 박하담 선생이 궁금해지는데요.
선생은 본관은 밀양이고 자는 응천,
호는 소요당이었습니다.
1516년(중종 11)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뒤 여러 번 대과(大科)에 실패하자
운문산(雲門山) 아래의 눌연(訥淵) 위에 정자를 짓고
소요당이라 명명하고
풍류로써 여생을 보냈다고 하네요.
조정에서 학행을 듣고
감역(監役)·봉사(奉事)·사평(司評) 등의 직임을 주어
여러 번 불렀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습니다.
삼족당 김대유(金大有)와 교분이 두터워
그와 함께 지방에
사창(社倉: 환곡을 저장하던 창고)을 설치하고
이를 이용하도록 하기도 하였으며,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 일파가 처형되자
그의 문집을 불태워버렸습니다.
82세로 죽은 뒤 청도의 선암사(仙巖祠)에 제향되었습니다.
역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소요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시니
장수하신듯 합니다.
위에 지방에 사창을 설치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청도는 좌,우로 넓이가 넓어
동쪽에도 사창을 하나 두었는데
그게 바로 동창천의 유래인
'동창' 이라는 지명입니다.
근처 삼족당 김대유와 관련된 삼족대도 있으니
같이 찾아보시면 좋습니다.
삼족대 풍경 또한 과히! 일품이죠.
비가 억수로 내리고 난 뒤의 삼족대입니다.
(2023년 9월 17일)
소요대에서 바라본 선암(仙巖,신선바위)과 동창천,
그리고 맞은편 강태공
한폭의 산수화 그 자체네요.
말 그대로 신선이 놀만한 바위입니다.
선암은 예전에는 입암처럼 우뚝 선 바위가 있었는데
언젠가 번개에 맞아서 잘려나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배롱나무가 숲을 이루는
맞은편 풍경 또한 일품이었네요.
지금쯤이면 저쪽 배롱나무숲도
절정일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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