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연정(居然亭)
거연정에 걸려 있는 연재 송병선 선생의 '거연정운' 판상시
'늙어감에 오히려 흥이 겨워서
아름다운 이곳에 문득 오게 되었네.
이름난 곳 안의삼동 땅에는
전씨 가문 백년이나 향기롭네
사람은 빛나는 천계에 있고
황석산은 태고의 정을 모았느리라.
깊숙히 한가로운 자연에 마음을 빼앗겨
잔잔히 읊으며 빼어난 물가로 내려가도다.'
화림동 계곡 선비문화탐방로
안의 삼동 중에서 화려한 자연의 미를 간직한 곳이
남강의 지류인 화림동(花林洞)이다.
화림동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금천이
'팔담팔정(八潭八亭)'을 이루어
예부터 정자 문화의 보고라 불렸다.
특히 농월정은 '달을 희롱한다'는
선조들의 풍류사상이 깃든 곳으로,
함양군을 찾은 많은 문인과 묵객들이
필히 거쳐간 곳이다.
선비문화탐방로는 이곳 화림동계곡을 따라
함양군 안의면에서 서하면에 걸쳐
2구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거연정에서 농월정유원지까지 6km(1구간),
농월정유원지에서 오리숲(안의)까지 4km(2구간)로 총 10km이다.
일시: 2024년 8월 15일
화림동계곡 물길 따라 선비문화탐방로 걸어봤습니다.
1구간 거연정에서 농월정 구간은
풍광 좋은 화림동계곡 따라 멋진 모습 볼 수 있었고,
2구간은 사실 이어보긴 했지만 그닥 감흥은 없었네요.
1구간만 걸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아뭏튼 선비문화탐방로 걷기 위해
새벽 일찍 출발해 자차와 대중교통을 연계하기 위해
함양 안의버스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안의버스정류장 근처에 주차하고
서하,서상가는 버스를 이용하여
선비문화탐방로 제1구간 시작점인 봉전마을까지 이동합니다.
거연정주차장 앞이 봉전 버스정류장입니다.
안의-서하-서상 버스시간표 입니다.
버스편이 많아서 좋네요.
1구간만 걸으신다면
농월정유원지에 주차하고
안의에서 출발해서 오는 버스 이용하시면 됩니다.
황석산 들머리이기도 한 우전마을 입구인
봉전에서 내려서 시작합니다.
예전에 대중교통으로 여기로 와서 우전마을에서 피바위 지나 황석산으로 올라
황암사로 내려섰던 적이 있습니다.
봉전버스정류장
먼저 거연정으로 내려갑니다.
내려서는데 '화림재 전공 유허비' 가 보입니다.
1640년대 화림재 전시서가 이곳에 거연정을 건립하였는데
이를 기리는 유허비입니다.
뒤쪽으로는 정선 전씨 재실인 수림재도 보입니다.
봉전마을은 정선 전씨 입향조인 화림재 전시서의 후손들이 많이 사는 집성촌이기도 합니다.
목교를 건너면 거연정입니다.
거연정(居然亭)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 선생이 1640년경 서산서원을 짓고
그 곁인 현 거연정 위치에 억새로 만든 정자를 최초로 건립하였다.
1853년 화재로 서원이 불타 이듬해 복구하였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원이 훼철되자
1872년 화림재 선생의 7대손인 전재학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훼철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재 건립되었으며
1901년 중수가 있었다.
'거연정(居然亭) 편액'
거연(居然)이란 주자의 정사잡연(精舍雜然) 12수 중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유래한 말이라 합니다.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정자를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말합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임헌회는
<고산문집>의 <거연정기>에
"영남의 명승 중 안의삼동이 가장 빼어나고, 그 중에서도 화림동이 최고이고,
화림동 명승 중 거연정이 단연 으뜸이다."
라고 기록한 바 있다.
여기서 안의삼동이란
안의현에서 경관이 빼어놨던 세곳의 동천(洞天: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
즉 화림동,심진동,원학동을 일컫는 말입니다.
거연정 구경하고 선비문화탐방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서산서원도 다녀옵니다.
선비문화탐방관에 있는 '생원 세량공 효자비'
효자비 안내판 내용입니다.
'삼강동(三綱洞)'
거연정의 화림재 전시서의 증손인 전우석의 충의,
아들 전택인의 효행,
손부 분성 허씨의 열행 등
3대에 걸친 충,효,열의 삼강행실을 기리는
'삼강동'이라 음각한 자연석도 보입니다.
서산서원으로 올라서니
맞은편 도숭산,대봉산이 시원하게 보이네요.
무덥던 날 백운산으로 올라
빼빼재 지나 대봉산 지나 도숭산으로해서 하산했던 기억이 나네요.
빼빼재에서 얻어 먹었던 비빔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서산서원(西山書院)
"조선 인조15년(1637) 봄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한산성이 함락되고 청 태종과 군신간의 삼전도 국치(國恥)가 일어나자, 깊은 산속에 은거코자 인조 17년(1639) 겨울, 화림재(花林齋) 전시서(全時敍)공은 거창 영승리를 떠나 이곳 새들 봉전에 이르러서 들을 개척하고 이듬해 봄 화림재(花林齋)란 서재를 지었는데, 마을에선 신평재(新坪齋)라고도 하였다. 헌종7년(1841)에는 경상, 전라, 충청, 강원 4도의 사림(士林)들이 화림재 전공의 7대조인 여말 충신 전법판서 채미현 휘 오륜(五倫)공을 제향(祭享)하자고 여러 차례 통문을 돌려 안의현 서쪽 20리 화림동에 서산사(西山祠)를 세웠다고 채미현실기에 전한다.
그러나 철종4년(1853) 봉전 돈 마을에 큰 화재가 일어나 서산사도 화염에 쌓이자, 한 서생(書生)이 죽음을 무릅쓰고 화림재 현판을 찾아 서원 뒤에 놓았는데, 현판은 그대로 남았으므로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이적(異蹟)이라 하였다. 하지만 고종5년(1868) 서원철폐 조령(朝令)에 의해 서산서원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 현판은 거연정(居然亭)에 걸려 있다가 1995년 문중에서 중건한 화림재로 옮겨져 오늘에 이른다.
현판글씨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실학과 서예, 금석학을 공부하고 예서의 묵린에 이름을 떨친 형조판서 위당(威堂) 신헌(申櫶)공이 순조 때 썼다.
서하면 봉전마을이 정부로부터 선비문화마을로 지정이 되고, 이후 권역별 국가사업에 선정되면서 서산서원을 중건(重建)하였다.
고종의 서원철폐령으로 인멸된 서산서원이 병신년 경자일(2016년 3월 19일)에 복원되었다."
서산서원에서 바라본 도숭산
그리고 구름에 잠겨있는 대봉산
다시 선비문화탐방로로 복귀해서
군자정 들렀습니다.
군자정(君子亭)
서하면 봉전마을은
일두 정여창 선생의 처가가 있던 마을로서
선생이 처가에 들러 머무를 때
군자정이 있는 영귀대에서 유영하였다.
정선전씨 입향조인 화림재 전시서 공의
5대손인 전세걸,세택이
일두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1802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
이라 칭하였다.
동호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달달한 커피 한잔 하며 잠시 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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