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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문화재 탐방

의성 명곡서원(明谷書院),정헌공 금은 박성양

by 우보72 2024. 6. 21.

 

의성 명곡서원(明谷書院)

의성군 문화유산 제37호

 

명곡서원은 정몽주 문하로 고려 말~조선 초 왜구 정벌에서 활약한

무신 박성양(朴成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역민의 교육과 후진의 양성을 위해

1818년(순조18)에 건립되었고,1815년에 사액되었다.

 

그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명곡서당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5년에 서원으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늘의 행선지인 의성 빙계서원 방향으로 향하다가

의성군 가음면 양지리에 있는 명곡서원이 생각나서 들러보았다.

 

이곳은 지난  봄 의성 산수유축제 때 돌아오면서 들렀던 곳이긴도 한데,

이번에는 마침 관리하시는분이 계셔서 명곡서원 내부와

사당인 경덕사 내부도 볼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정헌공(定憲公) 금은(琴隱) 박선생 신도비

 

금은(琴隱) 박성양(朴成陽)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금은(琴隱). 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한 박윤후(朴允厚), 할아버지는 판윤부사(判尹部事) 박사직(朴斯直), 증조부는 전객령(典客令) 박원두(朴元㺶), 부인은 첨사(詹事) 정승계(鄭承桂)의 딸 정부인(貞夫人) 동래 정씨(東萊 鄭氏)로 알려져 있다.

박성양(朴成陽)[?~?]은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하며, 고려 왕조의 운이 다하는 것을 보고는 문소현(聞韶縣) 봉두산(鳳頭山)[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봉양면 일대] 아래에 은거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박성양은 금서(琴書)[거문고와 책]로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 호를 금은(琴隱)이라 하였다. 왕조가 교체된 후 태조(太祖)가 수차례 박성양을 조정으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남해안에서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조정에서 천거한 원수(元帥)직을 수행하여, 왜구들을 물리쳤다. 의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천(永川)을 들렸는데, 류방선(柳方善)이 여러 선비를 거느리고 향교에 모여 개선을 환영하며 「향교요(鄕校謠)」를 증시(贈詩)했다고 한다. 왜구를 물리친 후 왕명을 받들어 한양의 근동(芹洞)[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미근동]에 머물며 조정에 나아가 총제(摠制)가 되었고, 이어 경상도 좌영 병마사(慶尙道 左營 兵馬使), 보덕 좌우장사(輔德 左右長史)를 역임하였다. 태종이 즉위한 후에는 전라도 안렴사(全羅道 按廉使), 함경도 북영 병마사(咸鏡道 北營 兵馬使)로 나아갔다. 1418년(세종 즉위년), 세종이 즉위하자 중군 동지총제(中軍 同知摠制)에, 이듬해인 1419년(세종 1)에는 중군 절제사(中軍 節制使)에 임명되는 등 중앙군의 요직에 있었다. 그리고 그해 대마도(對馬島) 정벌이 있었는데, 이때 박성양은 우군 절제사(右軍 節制使)로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세종 3년(1421)에는 별시위 절제사(別侍衛 節制使)와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慶尙道 兵馬 都節制使)에 임명되었다. 1424년(세종 6) 본인에게 부여된 과전(科田)을 김자이(金自怡)와 바꾸려 하다 발각되어 직첩(職牒)을 빼앗겼으나, 이듬해 돌려받았다. 1428년(세종 10)에는 좌군 총제(左軍 摠制)에 임명되었다. 한편 박성양은 대마도 정벌 이후 그 공으로 왕명에 의해 우군 동지총제(右軍 同知摠制)가 되었으며, 이어 가선대부 이조 판서 겸 도총부 부총관(嘉善大夫 吏曹 參判 兼 都摠部 副摠管)에 특승(特陞)되었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명곡서원 강당 명교당(明敎堂)

 

 

 

명곡서원 편액

 

 

 

 

 

 

명곡서당기

 

 

명곡서원중수기

 

 

명곡서원중건기

 

 

 

 

동재 향도재

 

 

서재 강의재

 

 

명곡서원 대문채

 

 

서원 뒤쪽에 있는 사당으로 올라갑니다.

 

앞에 올라가시는 분이 명곡서원 관리하시는 분이신데

대구향교에도 몸 담으셔서 그런지

학식이 깊으시고 

함양 박씨가 의성에 입향 하게 된 계기와

금은 박성양 선생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사당인 경덕사(景德祠)

 

금은 박성양 선생을 제향하고 있습니다.

 

 

 

 

 

 

 

 

명곡서원에서 복두산과 선암산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주신 명곡서원 책자와

책자에 있는 태조 이성계가  정헌공 금은 박성양에게 하사한 시 한수 전합니다.

 

 

 

 

 

 

 

 

 

 

 

 

 

-2024년 6월 16일 의성 명곡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