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서원(晴川書院)
청천서당은 1729년(영조 5) 사림에 의해 동강 김우옹을 제향하기 위해
처음에는 청천서원으로 창건되었다.
고종 때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이후 김우옹의 후손 김호림이 종택의 사랑채를 고쳐 청천서당으로 중건되었다.
서당으로 중건된 후 1910년(순종 4) 봄에 김호림의 아들 심산 김창숙이
교육 구국 운동으로 서당을 수리하여 성명학교라 부르고,
후진 양성을 위한 교사로 활용하였다.
회연서원과 함께 성주 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으로서 사림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김우옹을 중심으로 성주군에서 학문으로 뛰어난 인물들을 배향한 곳이자,
성주 사림 활동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또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힘쓴
성주군의 유학자 김창숙이 후진을 양성하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교육적·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김우옹은 성주 지역에서 정구와 함께 양강(兩岡)으로 불리며,
퇴계 이황의 제자가 되었다.
관직에 나아가 여러 벼슬을 지냈고, 기축옥사 때 유배되었다.
외삼문인 "수정문"
강당인 '일중당"
'청천서원(晴川書院)'
백범 김구가 썻다는 현판이다.
청천서원은 '청담1042'라는 한옥카페로도 활용되고 있었다.
내삼문인 경직문
'경직문'
사당인 '숭덕사'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
서계(西溪) 김담수(金聃壽)[1535~1603]·용담(龍潭) 박이장(朴而章)[1547~1622]을 제향하고 있다.
김우옹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성주군 대가면 칠봉동 사도실(思道谷)에서 태어났다.
성주 지역에서 정구와 함께 양강(兩岡)으로 불리며,
남명(南冥) 조식(曺植)과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가 되었다.
관직에 나아가 여러 벼슬을 지냈고,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유배되었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석방되었다.
박이장은 본관이 순천(順天)으로,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윤동 마을관련항목 보기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을 종사하였고,
인목 대비(仁穆大妃)와 영창 대군(永昌大君)을 구원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시를 지어 정인홍(鄭仁弘)과 절교하였다.
김우옹과 함께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1529~1590]을 구원하는 상소를 올렸다.
김담수는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윤동 마을에서 태어났다.
효우(孝友)와 학행으로 세상에 드러났고, 노수신과 조식의 직전 제자(直傳弟子)였다.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1494~1567]이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성주 지역으로 유배를 오자,
김담수는 이문건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덕계 오건에게 수학하고 금계 황준량과 강학하면서 김우옹 형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정구와 도의의 관계를 맺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한옥카페 '청담1942'
근처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생가도 같이 둘러보면 좋을 듯 하다.
-2024년 6월 1일 청천서원-
'국내여행,문화재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슬갑사 유적지(嘉瑟岬寺 遺蹟地) 비석 (0) | 2024.07.12 |
---|---|
독립유공자 직산 김창열 선생 기념비 (0) | 2024.07.11 |
성주 수성리 중매댁,갖말의 유래,숙야재(夙夜齋) (1) | 2024.07.11 |
성주 회연서원(檜淵書院),한강(寒岡) 정구(鄭逑) (0) | 2024.07.11 |
(합천)내암 정인홍 선생 묘소 (0) | 2024.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