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문화재 탐방

성주 수성리 중매댁,갖말의 유래,숙야재(夙夜齋)

by 우보72 2024. 7. 11.

 

 

회연서원 둘러보고 성주쪽으로 넘어가면서

성주 수성리 중매댁 표지판이 보여서 들러보고 갑니다.

 

 

 

 

 

 

 

 

 

 

 

이 가옥은 1903년(광무 7)에 현 소유자의 조부인 정재철이 건립한 가옥이다.

창건시에 안채,사랑채,대문채를 건립하였고,

1911년 고방채, 1915년에 안대문채 순으로 건물을 추가로 건립하였다.

가옥의 이름을 '중매댁'이라고 명명한 것은 현 소유자의 조모가

칠곡 매원의 중매마을에서 시집온 데서 연유한다.

 

 

 

 

 

 

 

 

 

 

 

 

 

 

 

 

수성리 중매댁이 있는 갖말 마을에 있는 공원

 

 

 

갖말의 유래와 공원 조성비

 

갖말은 '가지'와 '마을'을 줄인 순우리말로 한자어로는 '지촌(枝村)'이다.

이 마을이 구체적으로 언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나무를 가꾸며 서서히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갖말은 한강 정구 선생이 아버지 사중과 어머니 성주 이씨를

마을 뒷산인 창평산(蒼坪山) 기슭에 모시고,

그 곁에 한강정사(寒岡精舍)를 건립해 강학을 시작하면서 학자촌으로 성격이 바뀌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443년 전의 일이다.

 

한강 선생은 관향은 청주요 자는 도가,시호는 문목(文穆)이었다.

 

 

 

갖말공원 근처에 있는 숙야재(夙夜齋)

 

1603년 정구의 나이 61세에 숙야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팔작지붕 홑처마 건물이다

 

 

 

 

 

한강 정 선생 숙야재() 중건 상량문
【참판 최헌중()을 대신해 짓다.】

 

삼가 생각건대, 도는 융성하고 쇠퇴하는 때가 있으나 현자를 존경하고 덕을 숭상하는 기풍은 끊어진 일이 없고, 사물이 무너지고 흥기하는 운수가 있으나 덕을 천양()하고 훌륭함을 드러내는 일은 의당하였다. 이에 옛터를 살펴 아름다운 건물을 다시 짓게 되었다.

 

삼가 생각건대, 한강 선생은 실로 우리 영남()의 유종()이시다. 그 연원이 깊으니 한훤() 김공()의 외손으로, 덕성()이 길러졌으며, 문순공() 이자(, 이황())의 문인이라. 절문의칙()에 관한 정밀한 분석으로 《오복연혁도(沿)》가 있고, 천인성명()에 관한 체험과 신묘한 이해는 한 부()의 《심경발휘()》에 실려 있다.

(중략)

 

 

 

 

 

 

 

 

 

수성리 중매댁 근처에  의성김씨 효자각도 하나 보였다.

 

 

 

 

 

 

 

 

 

 

 

 

 

 

-2024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