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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문화재 탐방

육신사(六臣祠)

by 우보72 2024. 8. 10.

 
 

달성 하목정 들러보고 근처 육신사로 넘어갑니다.
 
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인
'박팽년,성삼문,이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방문일시: 2024년 8월 2일
 
 
 

 
 
 
 

 

육신사 가기전 보이는 충절문(忠節門)
 

 

 

충절문에서 육신사 까지 이어지는 배롱나무 가로수길.
배롱나무 꽃이 한창입니다.

 
 

 

육신사 입구에 도착하니 수령 543년이라고 적힌
오래된 회화나무가 보입니다.
 
이 나무는 사육신 취금헌 박팽년선생의 손자 박일산이 이곳 묘골에
99칸 종택과 태고정을 건립할 때 심은 것으로 전합니다.

 
 

 

육신사 입구 우측에 있는 '도곡재' 고택도 잠시 살펴봤습니다.
 
 

 

도곡재는 정조 2년에 대사성을 지낸 서정공 박문현이 지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세기 중엽부터 도곡공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선생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고 합니다.

 
 

 
 

 

도곡재 앞 마당 자그마한 연못에 수련이 이쁘게 피어 있습니다.

 
 

 

육신사 외삼문

 
 

 

외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홍살문이 보입니다.

 
 

 

홍살문과 옆에 피어 있는 배롱나무 빛깔이 절묘하게 매치가 되네요.
 

 

 
 

 

육신사 외삼문 안쪽에 '절의묘(節義廟)' 라는 편액이 보입니다.

 
 

 
'육각비'
 
'충정공취금헌박선생'(박팽년)
'충목공벽량유선생'(유응부)
'충렬공단계하선생'(하위지)
'충경공낭간류선생'(류성원)
'충간공백옥헌이선생'(이개)
'충문공매죽헌성선생'(성삼문)
 
사육신 여섯 분의 행적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내삼문인 '성인문(成仁門)'

 
 

 
 
 

 

'숭정사(崇正祠)'

 
사육신 여섯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처음 사당을 지을 때는 충정공 박팽년 선생만을 그 후손들이 모셔 제사 지냈으나,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제삿날 사육신이 함께 사당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뒤부터 나머지 분들의 음식도 장만하여 함께 제사지냈다고 한다.
 
그 뒤 하빈사를 지어 이들에게 제사지내다가, 1694년(숙종20) '낙빈(洛濱)'이란 현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866년 서원 철폐령으로 낙빈서원이 철폐되자 제사를 지내지 않다가 유림들에 의해 그 자리에 사당을 세워 다시 사육신을 봉안해 왔다.
 
1974년부터 1975년 사이에 '충효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해 지금의 육신사를 건립하였으며,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절문을 세우고 전통가옥을 복원하였다.

 
 

 
 

 
 

 
 

 
 

 
 

 
 

 

여긴 육신사 경내의 또다른 사당 충의사(忠義祠)
취금헌 박팽년 선생의 부친으로 전 형조판서,
사육신의 거사에 참여했다가 함께 희생되었던 박중림 선생을 모신 곳입니다.

 

 

 
 

 

태고정은 성종 10년(1479)에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건립한 정자입니다.
 

 

 
 

 

잘 둘러보고 근처 행선지로 발길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