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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문화재 탐방

영천 포은 정몽주 선생 생가

by 우보72 2024. 9. 19.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시는 임고서원은 뺀질나게 드나들었지만

정몽주 선생 생가도 있다고 해서 한번 찾아봤습니다.

 

 

 

 

방문일시: 2024년 8월 31일

 

 

 

 

 

 

 

입구에 보이는 '포은정몽주선생 생가' 표석

 

 

 

포은 정몽주 선생 생가 전경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선생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면

 

선생은 본관은 영일(迎日). 출생지는 영천(永川). 초명은 정몽란(鄭夢蘭) 또는 정몽룡(鄭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입니다.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운관(鄭云瓘)이고 어머니 이씨(李氏)가 난초화분을 품에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리는 꿈을 꾸고 낳았기 때문에 초명을 정몽란이라 했다가 뒤에 정몽룡으로 개명하였고 성인이 되자 다시 정몽주라 고쳤습니다.

 

 

정몽주는 고려후기 문하찬성사, 예문관제학, 인물추변도감제조관 등을 역임했으며,1337년(충숙왕 복위 6)에 태어나 1392년(공양왕 4)에 사망했습니다. 고려말 친원파가 득세하던 상황에서 신진사류로서 친명정책을 주장했고, 명과 왜에 직접 사절로 가는 등 담대한 외교가로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성균관의 사성으로서 신진 사류를 양성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고 기울어가는 고려 국운을 바로잡고자 국가기강 정비와 민생 안정에 노력했습니다. 이성계의 위세와 명망이 날로 높아지고 그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이들을 제거하려다가 역으로 이방원에게 살해당했습니다.

 

 

 

 

'포은선생탄생지'

 

 

 

'성임문(聖臨門)'

 

정몽주가 관례를 치를 즈음 아버지 꿈에 중국 주나라의 성현 주공이 나타 났으므로

아명을 버리고 몽주(夢周)로 고쳤으니

이로 인하여 생가의 대문을 성임문(聖臨門)이라 정하였다고 하네요.

 

 

 

 

포은정몽주선생상

 

 

 

 

 

'충.의.단.성'

 

"이 표석은 포은 정몽주선생의 24대 종손 래정(來晶)씨가 

포은 선생 생가중창 기념으로 중국 태항산에서 생산되는 홍보석을 수입하여 기증한 것이다.

태항산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애국지사들께서 구국활동을 하던 곳으로서

래정씨의 선친인 철수씨 또한 이곳에서 항일 독립 운동을 펼쳐 오셨다.

 

래정씨는 선친께서 온갖 고통을 감니하며 항일운동에 전념하던곳을

차마 잊을 수 없어 비록 작은 돌이라나 가져다 조상이 탄생하신 옛집 뜰 앞에

심어 두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다."

 

라고 표석을 세우게 된 연유가 적혀 있습니다.

 

 

 

 

성임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임문 현판

 

 

 

 

 

 

 

곳곳에 포은 정몽주 선생에 대한 안내판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조성된지 얼마 안되어 너무 인공적인 모습들이라 그닥 감흥은 없었네요.

 

 

 

 

 

'영정각'

 

정몽주 선생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주차장 앞에 코스모스가 아주 이쁘게 피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