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청계서원(靑溪書院)
청계서원은 1906년, 조선 성종때 사림파를 대표 하던 탁영 김일손이 한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던 청계정사 옛 터에다 유림에서 세운 것이다. 생전에 김일손은 청빈함을 요구하는 청요직을 두루 지냈으나 연산군때 '조의제문' 사건에 휘말려 무오사화로 희생되었다. 현재 청계서원에서는 김일손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방문일시: 2024년 8월 15일
남계서원 둘러보고 바로 옆에 있는
탁영 김일손을 제향하고 있는 청계서원도 같이 둘러봅니다.
생각도 않하고 왔는데 탁영 김일손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네요.
남계서원에서 걸어서 오니 먼저 '탁영 김일손 유허비'가 보입니다.
'탁영 김선생 유허비'
탁영 김일손은 누구인가
김일손(金馹孫,1464~1498)은 조선 송종.연산군 때의 문신이며 학자,사관,시인이다.
본관은 김해이며, 자는 계윤,호는 탁영(濯纓), 소미산인(少微山人)이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성종 때 춘추관의 사관이 되어 세조 찬위의 부당성을 풍자하여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었다. <조의제문>은 그의 스승 김종직이 항우(項羽)가 초 회왕(懷王), 즉 의제(義帝)를 죽이고 찬탈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초 의제를 조상하는 형식이었지만 실은 단종을 의제에 비유한 것으로 세조의 찬탈을 비판한 것이었다. 이 조의제문에 대해서 1498년(연산군 4년) 유자광·이극돈 등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그 결과로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고, 권오복(權五福)·권경유(權景裕)·이목(李穆) 등 사림파 여러 인물들과 함께 처형당하게 된다.
그의 언행 가운데 훈구파에서 문제로 삼았던 것은 덕종의 후궁인 소훈 윤씨(昭訓尹氏)에게 이유 없이 지나치게 많은 전민(田民)과 가사(家舍)를 내렸다고 세조의 실정을 비판했고, 세조가 소훈 윤씨와 소의 권씨 등 장남 덕종의 후궁을 범하려다가 실패한 것을 기록했으며, 〈조의제문〉을 그대로 사초에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그는 대역죄로 능지처참되고, 스승 김종직은 부관참시되었으며 다른 많은 사림들도 화를 당하게 되었다.
무오사화를 계기로 세조 때 등장하여 성종 때에 날개를 펴며 세력을 확장하던 신진 사림은 집권층인 훈구파에게 대거 숙청되면서 몰락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취도문(就道門)'
청계서원 강당인 '애락당'과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보입니다.
'애락당(愛樂堂)'과 용트림하는듯한 노송이 눈길을 끕니다.
'애락당' 편액
'역가재'
'구경재'
'내삼문'
사당인 '청계사'
탁영 김일손 선생을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탁영 김일손 선생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더군요.
판단은 역사가 하겠죠.
아뭏튼 남계서원,청계서원 잘 둘러보고 복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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