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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문화재 탐방

영천 도잠서원(道岑書院)

by 우보72 2024. 3. 3.

도잠서원(道岑書院)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100호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영지길 399 (용호리)

광해군 4년(1612년)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조선 중기의 학자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서재(書齋)뒤에 묘우(廟宇)를 건립하여 배향해오다가, 이듬해에 조호익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봉서원(芝峰書院)이라 하였다. 숙종 4년(1678년)에 '도잠(道岑)'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뒤 흥성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년)에 훼철되었다가, 1914년 복원되었으며 1981년에 정부의 지원으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호익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창녕.

선생(1545-1609)은 퇴계 이황선생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임진왜란 때 평안도 강동의 적소에서 물러나 소모관(召募官)이 되어 의병(義兵)을 모아 전쟁에 나아가서 많은 공을 세웠다.

선조께서 친히 '관서부자(關西夫子) 네자(四字)가 내렸으며, 사후에 시호는 문간(文簡),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도화제 둑방에서 바라본 도잠서원

도잠서당(道岑書堂)

도잠서원(道岑書院)

관서부자(關西夫子,관서의 대학자)

일찍이 퇴계의 가르침을 받고 고향에서 도덕을 실천하다 32세에 지역 유지로서 군적에 올리는 장정을 검사하고 감독해 달라는 경상 도사의 요청이 있었으나, 당시 모친상으로 상복을 벗지 않은 데다 시묘 등으로 병이 난 상태여서 그 일을 수행할 형편이 되지 못해 거절한다. 그 일로 나랏일을 거역안 토호로 몰려 전 가족이 관서 지역인 평안도 강동으로 유배되었다.

관서지역은 나라의 번방으로 배우고 싶어도 덕망있는 사람이 드문 곳이었는데 지산 선생은 20여 년을 머물며 그곳에서 숱한 제자를 기르고 지역을 교화하게 된다.

선조께서 친히 '관서부자(關西夫子)'란 글자를 크게 써서 하사한 배경이기도 하다.

지수문(止水門)

도잠서원(道岑書院) 강당

봉원재(逢原齋)

성모묘(聖募廟)

도잠서당,도잠서원

도화제(桃化堤),구룡산(九龍山)

-2024년 2월 17일 영천 도잠서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