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숭겸장군 유적지 배롱나무
방문일시:2024년 7월 20일
신숭겸장군 유적지에
배롱나무가 만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숭겸장군 유적지 답사도 할겸 찾아봤습니다.
먼저 순절단쪽부터 들러봤습니다.
"순절단(殉節壇)"
순절단은 사당이 없던 시절
신숭겸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자리에
단소를 만들어 제사를 지냈던 곳입니다.
대구광역시 지방문화제 제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서기 927년 후백제 왕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고 올라 올 때
왕건이 신숭겸,김락 장군을 대동하고
후백제군과 맛서 싸운 곳입니다.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5,000 고려기병이
몰살의 위기에 쳐 했을 때,
신숭겸 장군은 왕건을 구하기 위해 왕을 피신케 하고 왕의 옷을 바꾸어 입고
어거를 타고 왕을 가장하여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곳입니다.
후에 태조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광해주(춘천)에 예장하고, 전사한 자리인 이곳에는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게 하는 한편 토지를 하사하여
이를 수호하게 했습니다.
지묘사는 고려 멸망과 더불어 폐사되었으나,
1607년(선조40년)에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폐사된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순절단,충렬비를 건립하여 공의 혼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했습니다.
표충서원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도
배롱나무가 이쁘게 피었습니다.
표충서원 대문채
순절단에서 올라온 길
표충서원(表忠書院)
왕산 아래 제일 위채가 표충사(表忠祠)이다.
표충사는 선조 40년(1607)에 신중겸 장군의 외후손인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건립하여
현종 13년(1672)에 표충사(表忠祠)라 사액되었으나,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988년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사당을 중건하고
1993년에 신숭겸 장군의 영정과 신위를 모셨다.
이후 매년 한식에 향사를 받들고 있다.
'표충서원'
'표충재'
'표충사중건기'
'표충재기'
'표충사(表忠祠)'
충렬비각(忠烈碑閣)
선조40년(1607년)에 외후손 유영순이
신숭겸 장군의 충절 정신을 기려 충렬비를 세웠다.
비문은 후손인 예조판서 신흥이 짓고 글씨는 여주목사 김현성이 썻으며,
전문은 안변도호부사 김상용이 썻다고 한다.
내삼문인 '경의문'
'표충사(表忠祠)'
신숭겸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상절당(尙節堂)'
1991년에 지어진 상절당은
신숭겸 장군의 높은 절개를 추모하여
건립된 건물로 강당 및 서고로 활용되고 있다고 하네요.
들러보는 중에 비가 억수로 내려서
잠시 차로 피신했습니다.
그냥 뭐 양동이로 퍼부었네요.
비가 좀 잠잠해지길래
비 온 후 풍경도 다시 담아봤습니다.
색감이 더 짙어가는 느낌이 참 좋았네요.
신숭겸장군상과 홍살문
'고려장절신공순절지지비'
이 비는 고려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의
순절지에 세워진 것으로
1819년(순조19)경 신숭겸의 23대 손
의직이 세웠다고 한다.
철종 7년(1856)에 순절비 보호각을 설치하였으며
고종 9년(1872)과 1928년 두 번에 걸쳐
비각을 중수하였다.
비 온뒤 짙은 색감이 참 좋습니다.
보호수인 400년된 배롱나무입니다.
수령 400년의 팽나무
'태조 왕건 나무' 라고 적혀 있네요.
잘 구경하고 다음 행선지로 또 넘어갑니다.
잘~~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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